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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권여선의 손톱_돈이 휘두르는 삶의 범위

stack.er 2020. 11. 15. 19:34

한정희와 나, 권여선


삶의 기준이 돈이라면
소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소희의 엄마는 새로 이사 갈 집에 보탠다고 본희 언니가 내놓은 천칠백만 원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 혈육을 버리고 돈을 가졌다. 본희 언니도 엄마와 같이 이사를 빌미 삼아 소희가 모아둔 이천오백 만원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오지 않을까 했던 엄마도,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룻밤만 자면 오지 않을까 했던 언니도, 결국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 둘이 그녀에게 떠넘기고 간 빚을 갚기 위해서 그녀는 매일 돈에 얽매여 산다.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되었다. 옮긴 직장에서 출퇴근하는 시간이 1시간 늘어난 것을 최저시급으로 환산하고, 퇴근 후에는 출석 체크하는 사이트를 여러군데를 뒤적거리다가, 포인트를 차곡히 모아 생필품을 마련한다. 일주일에 3일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9시간, 또 3일은 11시간을 죽어라 일만 한다. 그렇게 일해서 벌어드린 백칠십 만원으로 수중에 남는 돈을 계산하면 십팔 만원, 십팔 만원으로 그녀는 라면과 호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소희는 직장에서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판매 실적이 가장 높다. 그러나 딱히 그녀에게 판매의 소질이 있다기보다는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고 아주 무나아안하게, 무색무취하게, 고객들에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또 추운 겨울날, 그녀는 곱빼기로 아주 맵게 짬뽕 한 그릇을 주문한다. 그런데 원래 곱빼기면 오천오백 원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매운맛을 추가하니 오백 원이 더 추가되어 육천 원이라는 것이다. 육천 원이면 일주일에 딱 한번 사 먹는 제일 저렴한 찌개용 돼지고기 한 근을 살 수 있다며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가게를 나온다. 그 모습을 보며, 사장은 매가리가 없다며 계산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진다. 여기에 지금 일하는 스포츠 매장 매니저는 쇄기를 박는다. 얼마 전 본사에서 지급한 신상품 스포츠화를 신지 않고 언니에게 줬다는 소희의 말을 들은 매니저는 그녀에게 생각이 없다고 나무란다. 무나아안, 무색무취, 매가리, 생각이 없음 모두 밖에서 그녀를 평가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녀는 짬뽕이 아닌 라면을 먹은 것은 한 푼을 더 보태 저축을 하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이 운동화를 판 것은 올겨울에 난방비 이만 원을 보태기 위한 것이었다며 자신은 생각이 있고, 매가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잘 들여다보면 결국 이 생각과 행동의 기준도 모두 돈이다. 조금이라도 벌어들이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또는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처리하기 위한 생각이고 행동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가 돈을 다 갚으면, 그 공백은 어떤 생각과 행동이 대신할 것인가.

어릴 적, 그녀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육상을 하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거절했다. 운동은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질은 가능성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돈 앞에서 굴복 당했다. 꼭 육상을 해야만 하겠다는 굳은 의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해보지 못한 것 앞에는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오늘도 출근을 위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달리는 그녀의 마음속에는 육상을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육상 이후로 그녀의 꿈은 소설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빨리 대출금이 두 배가 되기 전에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 밖이다. 그녀는 그 이후로, 돈이 아닌 어떤 꿈도 꾸지 않는다. 아니, 꿈을 꿀 수 없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당장에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돈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그녀에게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이라는 것이 싹트기 전에 그녀는 씨조차 뿌리지 않는다. 여기서 그녀가 빚을 다 갚는다면 돈 대신 무엇이 자리하게 될지가 궁금했다. 돈이 아닌 자리에 꿈이 들어올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꿈꿔본 적이 없기에 꿈을 꿀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빚을 다 갚은 자리에는 돈으로 욕망하는 것들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돈이 제공하는 ‘기회’의 차별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돈은 기회를 가져다준다.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기회 말이다. 소희와 그녀의 어머니는 돈이 없어서 육상을 꿈으로 생각조차 못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풍족하다면, 이 소질을 천운이라 여기고, 아낌없는 투자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육상 훈련을 받기에 가장 좋은 장소와 코치를 찾을 것이고, 아마 나갈 수 있다면 해외로까지 갈 것이다. 만약 소희가 육상을 했다고 했어도, 돈이 많은 집에서 육상 훈련을 받은 사람과는 그녀의 소질만으로 따라잡기에는 점점 벅차질 것이다. 돈은 먼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차별시키고 결국, 그 일의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단절을 대변하는 손톱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소희의 엄지손톱이다. 사건은 민경언니가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하는 것이 무리라 판단해 그녀의 어머니와 ‘상의’를 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소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내면에서 무언가 뜨겁게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분출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박스 밑으로 손을 급하게 넣어 튀어나와 있던 쇠에 그녀의 엄지손톱이 박히면서 손톱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살이 찢겼다. ‘상의’라는 두 글자에 급하게 웃던 그녀는 손톱이 아니라 무엇인가로도 그녀의 마음에 구멍을 내고자 했다. 왜? 그녀는 ‘상의’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의’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서로 논의함’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서로’인데 그녀는 서로를 느낄 새가 없었다. 모두 그녀에게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도 상의 없이 집을 나갔고, 본희 언니도 상의 없이 집을 나갔다. 이 둘은 그녀에게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단절을 선고했다.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단절적인 행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민경언니가 그녀에게 너랑은 ‘대화’가 안된다고 했다. 서로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소희에게는 일반적인 단절의 형태가 민경언니의 상의라는 서로의 형태를 접하니, 그 이질적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분출이 오른쪽 엄지손톱이다. 손톱은 그 이질의 표현이고, 소희의 단절의 형태를 대변하는 요소이다. 그래서 회사를 출근하는 길에는 손톱이 아려오듯 통증이 있었다. 엄마와 본희 언니가 다시는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냉동 치료를 받은 손톱에서 거즈를 떼어냈다. 그러나, 핸드폰 대리점에서 자신에게 안내 데스크에 가면 껌을 받을 수 있다는 할머니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서 할머니 앞에서는 손톱을 가리고 싶었다. 단절이 아니라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기차를 타고 가는 듯 느꼈다.

소희의 손톱은 나을 것이다. 새로 지은 신축 빌라를 돌아보며, 언니랑 둘이 살 거라며, 언니가 키우고 싶다던 고양이를 같이 키워도 되냐고 물어보던 소희는 결국 ‘서로’에 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언니가 다시 돌아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으나, 서로를 향해있는 소희의 마음이 계속된다면, 그녀의 손톱도 서서히 아물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