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_사랑이 열어주는 세계의 확장성

stack.er 2020. 11. 21. 20:04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인포스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랑은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가진 세계에서 그가 가진 세계를 만나면, 우리의 세계는 확장된다. 

그리고 사랑이 끝나면, 우리는 서로가 열어준 세계에 남아, 다시 각자의 삶을 이어간다.

이 영화는 사랑이 끝나고 우리에게 남기는 것들에 대해서 툭툭 던진다.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수상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무도 그 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모차 안에는 돈, 보물, 마약이 들어있다던지 심지어는 죽은 손주를 태우고 다닌다는 갖가지 소문이 떠돈다.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이른 아침, 츠네오는 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유모차를 마주하게 된다. 잔뜩 긴장을 하고 들춰본 유모차 안에는 젊은 여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쿠미코(이케와키 치즈루)로 다리가 불편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이른 아침에만 산책을 나온다. 갑작스러운 첫 마주침을 시작으로 츠네오는 할머니네 댁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다. 밥이 맛있기도 했지만, 조리대 의자에서 다이빙을 하듯 쿵 떨어지는 그녀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 그 집에 찾아간다. 

 

츠네오, 쿠미코의 첫 만남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장면

 

조제, 사랑의 속성을 아는 자 

조제, 사강의 책을 읽고 있다

츠네오가 할머니 댁에 가서 밥을 먹고 있으면, 조제는 한편에서 늘 책을 읽었다. 조제의 책을 들춰보던 츠네오는 사강의 「1년 후」라는 책을 발견한다. 조제는 이 책에 상당한 흥미를 보이고 츠네오는 헌책방까지 가서 그 속편을 조제에게 가져다준다. 조제가 낭독한 이 부분은 아주 흥미롭다. 사랑은 마치 불변의 영원성을 가질 것 같지만, 실은 그 끝에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온다는 것. 하지만 그리 소란스럽지 않다. 다시 서로를 만나기 전의 고요하고 고독한 상태로 돌아간다. 쿠미코의 가명인 조제는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는 영화 전체에 걸쳐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는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의 끝을 마치 알려주는 듯하다. 아니, 모든 사랑의 결말이 이러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호랑이, 사랑이 가져다주는 세계의 확장성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남자가 안 생기면 호랑인 평생 못 봐도 상관없다고.

호랑이는 조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고 싶은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온다. 남자가 안 생기면 평생 못 봐도 된다고 생각했던 호랑이였기에, 조제에게 츠네오가 없었으면 아마 그는 평생 호랑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와 함께 본 호랑이는 그녀의 잠재적으로 웅크리고 있던 세계가 무서움과 직면하는 계기 가 된다. 그녀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이 상징성은 그녀가 세계와 접하는 것들의 수단의 확장성에서 흥미롭게 찾아볼 수 있다. 

 

 

조제가 츠네오를 만나면서 넓혀간 세계

 

조제가 처음 츠네오를 만날 때에는 어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야 하는 이른 새벽, 할머니의 도움에 의해서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담요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칼을 늘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조제의 유모차에도 변화가 생기는데, 츠네오는 조제의 유모차에 보드를 달아서 개조한다. 할머니가 잠자는 틈을 타 처음으로 그녀는 '낮'에 자신을 감추지 않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조제는 빠르게 달리는 츠네오의 속도에 처음에는 어리둥절 하지만 그 속도로 처음 마주하는 세상에 새로워한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신나 하는 조제와 츠네오의 이 장면은 엄청난 짜릿함을 가져다준다. 이 사람이 열어준 세계가 얼마나 빠르고 크고 시원한지 말이다. 한참을 신나게 달리다 둘은 제 속도를 못 이겨 떼구르 넘어진다. 넘어진 와중에도 해가 쨍쨍하게 떠있는 낮에 떠다니는 구름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조제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벅차다. 조제와 츠네오가 더 깊은 사이가 되면서는 조제는 유모차를 버린다. 그 이후에는 자신의 몸을 옮겨주는 어떠한 수단도 없이 오로지 츠네오의 등에만 의지하여 세상을 마주한다.

 

조제의 유모차에 보드를 단 츠네오
츠네오의 등에 업힌 조제
전동휠체어, 혼자 장을 보고 오는 조제

업힌 그녀에게 츠네오는 휠체어를 사자고 했지만, 조제는 츠네오에게 계속 자신을 업고 다니라며 휠체어는 사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끝이 나고, 그녀는 마지막에는 오롯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난다. 복지과 사람이 일주일에 몇 번 와서 장을 봐준다는 그녀의 과거와 다르게, 당당히 장을 봐서 세계에 직면한 그녀의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다. 만약, 츠네오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그녀의 세상은 좁은 유모차 안이 전부였을 것이다. 츠네오가 열어준 세상은 넓고 당당했다. 몸이 불편하기에 존재를 감추고 살아가야만 한다고 했던 할머니의 말과는 다르게 그녀는 더 이상 담요 안에 숨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살아간다. 츠네오는 조제의 곁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지만, 그가 열어준 세상은 여전히 조제에게 남아 그 세계에서 조제는 다시 그녀의 삶을 살아간다. 

 

 

물고기, 사랑의 끝

물고기의 성에 온 조제와 츠네오

온천 여관을 가는 길에 보인 물고기 모텔(?)에 가자고 조른 조제 때문에 물고기의 성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랑의 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이란 언젠가 그 끝을 가진다는 것을. 그녀는 아무도 없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둡고 어두운 해저에 살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기에 외로움 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곳에서 벗어났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츠네오와 헤어지게 된다면 혼자 조개껍질이 되어 해저를 데굴데굴 굴러다닐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 그녀는 그가 남긴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츠네오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차를 빌려 처음으로 조제는 자신이 있던 곳을 벗어나 가장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가는 길에 수족관에 들리지만, 안타깝게도 수족관은 휴관이었다. 원래 어두운 해저에 살던 그녀가 그와 함께 그녀가 있었던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의 사랑의 끝에 대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휴관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는 그녀를 마주한 그의 표정 또한 말이다. 그리고 헤어지고 난 뒤에는 다시 그녀가 돌아갈 세상이 그곳이라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그녀가 아주 어두운 해저에 있었다고 말했을 때, 더 이상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그를 보면서 씁쓸했다. 그들의 끝이 보이는 것만 같아서 보고 싶지 않았다. 

 

 

츠네오에게 이별 선물을 건네는 조제

그러고 몇 달의 시간을 함께 보내다가 조제는 츠네오에게 이별 선물을 건네고, 그들은 헤어진다. 별다른 요동없이 헤어짐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츠네오는 길가에서 갑자기 울고 만다. 더 이상 조제와는 친구로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잔잔해 보였던 그였기에, 그 울음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랑의 기억이 남는 방법

츠네오가 조제의 유모차에 보드를 달아서 나간 날, 조제가 처음으로 빠른 속도로 마주한 세상은 새로웠다. 츠네오가 달리는 장면에서 조제가 마주한 세상은 마치 빠른 속도로 사진을 찍은 듯, 초점도 흔들리고 비스듬하고 사물의 형태도 뭉개진다. 첫 장면에도 이러한 촬영 기법이 나오는데 이는 츠네오가 조제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찍었던 사진들이다. 아주 몇 년이 지난 뒤에, 이를 회상하는 듯했는데, 그는 그립다고 했다. 오래될수록, 기억은 이들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는다. 

 

진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사랑도 아주 단편적으로, 편집적으로 그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흔들리듯, 기울어진 듯, 그렇게 각자의 마음에 남아있다. 그 기억은 종종 삶을 살아가게 하고, 때때로 잠시 그때로 돌아가 살아가게 한다. 

 

불변할 것 같던 사랑이 가지는 일시성, 하지만 그 잠시가 각자에게 남아 어떻게 그들의 세상을 열어주는지, 또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지. 그 자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느껴보고 싶다면 오늘 이 영화를 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