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동안 신분이 3번이나 바뀌었다_대학 5년의 복기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신분이 3번이나 상승(?)했다. 처음에는 한 달 뒤면 대학을 졸업하는 4학년이었다. 내 대학생활을 돌아보니 성실히도 살았구나 싶어, '나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를 휘황찬란하게 기록했다. 그다음은 불안으로 가득가득 살아갔던 취준생이었다. 취준생이 되니 먼저 자리를 잡은 다른 사람들과 자꾸 비교하면서 나를 낮췄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직장인이다. 직장인이 되니 좀 여유가 생겨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다시 저 밑에 있던 나를 들어 올리면서 했던 생각들을 기록했다.
올해 1월 말, 졸업사정결과 합격자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수 현황을 무탈하게 마쳤구나라는 안도감도 잠시, 이제는 진짜 독립적으로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공대지만 디자인과에 가까운 과를 졸업하면서, 학기 마감이 다가오면 늘 밤을 새우고 생각을 정리해서 시각화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스케치를 하고 도면을 그리고 건물을 세웠다. 대외활동도 건축과 관련된 활동만 했다. 학교 설계 수업이 끝나면 곧장 회의를 하러 갔고, 매달 있는 정기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서 매주 1회 이상 대면이나 카톡 회의는 필수였다. 책임 있는 자리에 올라가니, 또 그 자리에 적합한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동아리 활동 중 3박 4일 어머니랑 제주도에 다녀왔는데,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장소로 달려간 적도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정기회의에서 팀장 발표를 놓친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뭐든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또 소위 건축 공모전에서 알만한 공모전들은 한 해에 한두 개씩 출품했다.
그러다 보니, 늘 바쁘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늘 바쁜 스케줄을 버겁게 소화했다. 그게 열심히 사는 거라 굳게 믿으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렇다 할 결과물을 거두기도 했지만, 아닐 때도 많았다. 밤을 새워 만들어간 도면이 교수님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이때까지 한 모든 것들을 뒤엎어야 했고,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프로그램들을 독학하거나 잘하는 친구로부터 알음알음 배웠다.
1, 2학년 때는 학점도 그저 그랬다. 낮은 전공 학점을 교양 학점으로 메꿨다. 디자인에 소질이 전혀 없음을 확인사살로 알아가고 있을 무렵, 나는 내가 계속 거기에 있어도 되는지만을 되물었다. 길을 정하지 못하고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마치 그 타이틀을 쟁취하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어디로도 발을 떼지 못할 무렵에 나는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저쪽 인생의 나'가 되어야만 완벽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이쪽 인생의 나'는 '저쪽 인생의 나'에게 갉아먹히고 있었다.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찌 되었건, 이 길도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쪽 인생의 나'에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건축과 관련된 활동들을 시작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내가 생각한 것들이 건축화되고, 시각화되는 것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일이 처음으로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나는 동기들과의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건축책, 설계 책들을 하나씩 섭렵해갔다.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장애를 넘어왔다.
4학년 졸업전시를 끝내면서, 지도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역전'이라고. 당신은 2002년 이탈리아 전이 가장 기억에 남으신다고 하셨다. 이탈리아에 지고 있을 때, 대한민국은 동점 그리고 역전승을 이뤄냈다고. 인생은 그런 거라고 말이다. '역전' 맞았다. 나는 대학생활 동안 역전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결과는 역전승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결과물들을 만들어냈고, 학교 졸업전시에서 상을 받았다. 넘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지금 와서 보니 많이 넘어온 것 같다. 그것까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돌아보니 많이 해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면서 마음이 많이 내려갔었다. 재수와 휴학을 하면서 조금은 늦어 보이는 내 나이가, 새삼 숫자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동기들은 하나씩 자리 잡아가면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있는데, 나는 왜 아직 이러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렇게 아등바등 보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뭘 해야 했었는지 후회도 됐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용기 내 도전해보지 않은 것들, 두려워 맞닦뜨리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 하지만 그랬어야 했던 것들이 후회로 돌아와 마음에 박혔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여럿 일들을 했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여유를 만들지 못했고 다시 후회로 돌아왔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했고, 현재의 나와 동기들을 비교했다. 자꾸 과거의 나를 부정했다. 비교의 시작은 사소했지만, 비교를 할 때 나는 너무 큰 타격을 받았다. 의지로 가득차기보다 무기력해졌고 소심해졌다.
비교를 통해서 피폐해졌지만, 결국 나는 나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과거의 나'에서 찾았다. '과거의 나'는 나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매순간 노력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살았더니 얻은게 더 많았다. 나는 나를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성장했다. 흔들렸지만, 굳건히 꾸준하게 하는 것이 결국 내가 찾은 답이었다. 지금을 잘 살아가야겠다. 그래야 미래의 내가 흔들릴 때, 지금의 나를 회상하며 다시 살아나갈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