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無印良品)≫
상품,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는 브랜드
이야기의 일관성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전달되는 브랜드
삶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녹이는 브랜드
하나의 브랜드가 삶에 관여하기까지 단순한 값싸고 질 좋은 상품으로만 유혹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상품, 그 이상의 이야기와 가치를 전달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이다. 그런 면에서 무인양품만 한 브랜드가 있을까? 무인양품은 단순히 판매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무인양품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다양한 매개체들로 소비자들은 그들의 철학을 ‘경험’‘경험’함으로써 체득한다. 무인양품의 판매 물품은 일상생활의 전 범위를 다루지만 의식주 그 이상의 라이프 스타일(Lifestyle)을 제안함으로써 상품은 ‘삶’ 안으로 들어온다. 무인양품은 일본의 긴 경제 불황 속에서 어떤 스토리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또 그들이 제안하는 경험의 방법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무인양품은 일본의 경제 불황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며 성장했다. 무인양품은 당시 소비자들의 가치소비의 수요에 주목하며 이들의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생기는 좋은 라이프 스타일 방식에 대해서 제안했고 일관된 ‘공’(空) 사상으로 소비자에게 차별적으로 접근했다. 물론, 중간에 변수가 생기면서 위기가 있었지만 전문 경영인과 디자이너의 협력으로 라이프 스타일 숍에서의 부동의 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1) 가치소비의 등장
일본은 1980년 후반 형성된 거품이 붕괴되면서 누적된 부채에 디플레이션이 닥쳤다. 멈춰버린 경제 성장에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는 위축되었고 그들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1990년부터 지금까지의 30년을 ‘잃어버린 30년’이라 부른다. 그러나 긴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1990년대 1인당 국민소득(GNI)은 3만 달러를, 2018년에는 4만 달러를 넘으며 지속적인 소득 상승세를 보였다. 소득의 상승으로 소비자들은 이전의 획일화된 공산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차별적 소비를 원했다. 이는 사회 구조적으로 탈 물질주의가 생겨난 시기와도 맞물린다. 물질 중심의 가격과 편리성에 초점을 맞춘 모더니즘적 소비에서 탈피하여 경험과 가치에 초점을 맞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소비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소득의 상승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각자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비하도록 했다. 이로써 ‘가치소비’의 시대가 열렸다.
(2) 라이프 스타일 숍(Lifestyle Shop)의 등장
가치소비는 기존의 상품과는 다른 차이점을 확실하게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의 입지를 다질 필요가 있었다. 이때 등장한 라이프 스타일 숍은 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을 판매함과 동시에 의식주 그 이상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며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닌 경험적인 요소를 제공했다. 여기서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란 윌리엄 레이저(William Lazer, 1963)는 전체 사회 속에서 뚜렷이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정한 생활양식이라 정의했다. 라이프 스타일 숍에서 구매하는 물건은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특별한 상징성을 가졌다. 이를 해롤드 버크만(Harold Berkman, 1978)은 라이프 스타일을 소비를 결정하고 동시에 소비 때문에 결정되는 일관된 행동 패턴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소비 자체는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했다. 이렇듯 특별한 라이프 스타일 숍의 철학과 그를 드러낼 수 있는 상품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와 맞아떨어졌다..
(3) 무인양품의 역사
1980년 일본 대형 슈퍼마켓 ‘세이유(Seiyu)’의 프라이빗 브랜드로 시작해서 1988년 세이유에서 ‘양품계획’으로 독립했고 이듬해 ‘무인양품’ 영업을 인수했다. 현재 무인양품은 세계 28개국에 9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고, 2003년에 한국에 진출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가치 소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무인양품은 물건 판매하는 것 그 이상의 철학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무게를 실었다. 먼저 무인양품의 뜻을 살펴보면 ‘무인’(無印)은 도장이 찍히지 않은, ‘양품’(良品)은 좋은 물건을 의미한다. 브랜드를 내세워 강력하게 인지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무인(無印), 말 그래도 도장(브랜드)이 없지만 보편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강조해 접근한다. 여기서 그들은 빨리 사용하고 빨리 버리는 대량 소비 사회에서 오래 쓰는 생활 방식을 제안한다. 물건을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유행에 쫓기지 않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스타일에 가까우면서 물건의 품질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멀리 보면 자원을 절약하고 아끼는 방법 중 하나로 이러한 소비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생활의 풍족함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무인양품의 핵심적 사상은 ‘공’(空)으로 압축 정리할 수 있다. ‘공’(空)이란 비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고 또 모든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풍족함을 의미한다. 불필요한 것을 빼고 남은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오히려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무인양품의 상품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그들의 브랜드 철학에 동참하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무인양품은 199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0%에 가까웠지만, 같은 기간 동안 무인양품의 매출은 440% 증가했으며 경상이익(영업 이익에 영업 외 수익을 가산하고 영업 외 비용을 공제한 값)은 1만 700% 증가했다. 하지만 이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SPA 브랜드가 급성장하면서 2000년 1만 7350엔이던 주가는 2001년 2750엔으로 급락했고, 같은 해 무인양품의 모체인 양품 계획이38억 엔의 적자를 낳았고, 무인양품은 10억 엔의 적자를 달성했다. 이때, 마쓰이 타다미쓰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Bottom up based project’(뒤집어엎기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그는 외부 컨설턴트와 내부 TFT을 조직하여 문제점을 진단했고 내부 시스템의 결함을 발견했다. 방대한 양의 기획 방안들이 축적되었지만, 실행력은 고작 5%에 미치지 못했다. 그 실행력을 뒷받침해 줄 시스템이 견고하지 않아서였다. 그는 우수하고 창의적인 인재들과 결합해 개발, 디자인, 전략을 모두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 구조를 개선하며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계량화했다. ‘매뉴얼 무지 그램’(MUJI GRAM)을 제작해 본사의 업무를 표준화시키고 조례를 만들어 정보 공유를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무인양품의 전 직원이 참여해 근무 수칙을 완성해나갔고 이를 통해 직원들은 자신의 의견 표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튼튼한 회사의 기본기를 만든 것이다. 또한 디자이너들과 협력해 무인양품의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비했다. 특히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무인양품의 핵심인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해 브랜드 방향성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존의 ‘이것이 좋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합리적인 디자인과 가격으로 접근했다. 그들의 핵심 사상인 ‘공’(空)을 극대화하며 단순하고 간결함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지1년 후인 2002년에는 흑자로 전환되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사장을 맡은 해인 2007년에는 1620억 엔이라는 기록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4) 무인양품의 차별화 전략
무인양품은 그들만의 철학을 물건과 연관 지어 제시함으로써 가치소비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켰다. 여기서 타인과 나를 더 구별 짓는 프로그램을 특별한 ‘경험’으로서 제공했다. 먼저 ‘무지유어셀프’는 소비자가 무인양품의 물건을 구매한 이후, 스탬프를 찍거나 간단한 자수를 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기성품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확실한 자신의 개성이 담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진다. 저렴한 가격으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커스터마이징(customized) 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경험함으로써 뚜렷하게 브랜드를 각인한다. 또한, 판매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숍에서 경험 중심의 호텔로 공간을 확대했다. 무지호텔(MUJI HOTEL)에 투숙하는 동안 무인양품의 가구, 제품, 식품 등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철학과 정체성(Identity)을 깊게 느낄 수 있다.
무인양품의 스토리와 정체성은 상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패키지, 포스터(광고), 더 나아가 공간은 그들의 철학을 확장적으로 잘 드러낸다. 무인양품의 디자인은 단순하고 간결하면서도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품질 또한 양질이다. 그래서 무인양품의 상품은 오래 사용해도 좋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를 소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임을 일깨웠다. 무인양품의 핵심적인 사상인 ‘공’(空)을 중심으로 디자인적인 비움과 간결함이 오히려 라이프 스타일의 풍족함으로 채워지면서 확고한 그들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어떻게 다양한 매개체들에 적용되었는지를 순차적으로 살펴보자.
(1) 상품
무인양품의 디자인은 매우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이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외하고 아주 본질적인 것만 남김으로써 그들의 미니멀리즘적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이는 실용적이고 자연적인 관점과도 이어진다. 오른쪽의 표고버섯은 깨끗하고 잘 정리된 형태가 아니라 쪼개지고 부서져있다. 그러나 이를 투명한 패키지에 담음으로써 이들의 자연 그대로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연출했다. 본연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무인양품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
(2) 패키지(Package)
포장 종이와 상자는 표백 과정을 거치지 않은 무가공 산출물이 가지는 투박함이 잘 드러난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고 환경에 유해하지 않은 종이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무인양품이 가지고 있는 철학을 잘 드러낸다. 또한 상품 자체에 ‘무인’(無印), 도장(브랜드)이 각인되어 있지는 않지만, 포장된 패키지에 무인양품의 로고와 일관된 태그 디자인이 적용되어 그들의 정체성을 어김없이 잘 드러낸다. 또한 실용성을 추구하는 브랜드답게 태그에는 상품의 제작 경위와 상품 설명을 표기했다.
(3) 포스터(광고)
무인양품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무인양품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공’(空)을 이미지적으로 잘 표현한다. 그는 비어있음은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잠재성을 내포한다고 말한다. 그는 포스터와 광고에서 지평선만을 올린다. 아래의 포스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소금 호수에서 촬영한 지평선이다. 푸른 하늘과 하얀 소금 호수, 그리고 그를 가로지르는 지평선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장소이다. 더 나아가 지평선을 통해서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브랜드의 가치를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무인양품의 미니멀리즘과 무한성의 철학을 하나의 압축적 이미지 요소로 표현하고 소통한다. 불필요한 요소를 빼고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바로 브랜드가 없는 무인양품이 가진 진정한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인양품은 일본의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는 틈에서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인한 가치소비에 대한 수요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 시점에서 등장한 라이프 스타일 숍은 일상생활의 전반의 물건을 판매했고, 무인양품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삶의 방식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무인양품의 철학적 토대가 되는 사상은 바로 ‘공’(空) 사상이다. 비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 없이 제거한다. 그래서 무인양품의 디자인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그러면서 엄격한 기준을 두고 품질관리에 가장 힘을 쏟기에 품질 또한 양질이다. 그래서 무인양품의 상품은 오래 사용해도 좋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를 소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임을 일깨웠다. 늘 넘치게 살아왔던 현대인들에게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적당성을 제공했던 무인양품은 주목을 받았다. 비웠지만 실질적으로 그 자리는 적당함과 그로 인한 삶의 풍족함이 자리 잡았다. 비웠기 때문에 채울 수 있다는 역설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철학을 제시한 무인양품은 확고히 그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무인양품의 상품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그들의 브랜드 철학에 동참하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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