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생이 둘이나 있다.
여동생과는 2살, 남동생과는 6살 터울이 난다.
여동생 친구는 자기 언니랑 싸우면 변기에 언니의 칫솔을 넣는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우리가 정말 친하다고.
친밀한 에피소드
벽장 속 강남스타일
2012년의 이야기다. 내가 고1, 여동생이 15살, 남동생이 11살 일 때다. 이제 근 10년이 다 돼가는 이야기다. 1년에 한 번 있는 아버지 친구 모임에 갔을 때였다. 놀러 온 또래 친구들과는 너무 어색하고, 그렇다고 어른들 사이에 끼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우리는 방 하나를 차지하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전 세계적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광풍을 일으킬 때였다. 우리는 벌컥 벽장문을 열면서 강남스타일을 외쳤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노홍철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등장한다.) 동영상이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자료가 없는 게 상당히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의 등하교길
전형적인 방 3개, 화장실 2개 아파트에 살면서 나와 동생은 늘 같은 방을 썼다. 매일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까지 여동생과 등교를 했다. 1년에 한 번씩 반에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기면, 밤새 그 아이 이야기로 정신없이 보냈다. 그리고 동생은 다음 날, 나를 기다리는 척, 안 본 척, 그 친구를 스캔해갔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에 갔다. 매일 동생과 등교하던 길을 친구와 함께 갔다.
바톤을 터치해서 여동생이 4학년, 남동생이 1학년 이 둘은 같이 등교를 했다. 나는 매번 늦게 준비하는 동생에게 '너 자꾸 그렇게 늦으면, 나 먼저 간다.'라고 했는데, 이를 여동생이 남동생에게 시전 했고, 허겁지겁 나온 남동생은 책가방을 두고 학교를 간 적도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매일 늦게까지 반복적인 일상을 겹쳐가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기적으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동생은 입시를 준비했고, 여동생은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방학이 돼야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남동생이 대학에 가기 전, 우리 셋은 언제쯤 같이 합법적으로(?) 술 한잔 같이 할 수 있을지 얘기하곤 했다.
이번 연도에는 남동생이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얼마 전, 회사 앞으로 동생들이 찾아왔다. 퇴근 후 보는 얼굴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라, 한적하던 거리도 사람들로 꽉 찼다. 간신히 창가에 자리를 잡고는 본격적으로 술을 시켰다. 뜨끈한 나가사키 짬뽕에 사이좋게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사람이 많아, 한참이나 있다 짬뽕이 나왔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술잔을 부딪치던 그 어떤 미묘하고 짜릿한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책가방이나 빠뜨리고 누나를 따라나서던 이 조그만 녀석과 같이 술을 마시다니... 술기운이 오른 남동생은 썸의 일화를 늘어놓았다. 코로나19 속에서, 열악한 비대면 수업 환경 속에서도 썸을 타고 있는 이 녀석의 일화가 너무 신기하고 귀엽기만 하다.
짬뽕 바닥이 다 드러날 때까지, 우리는 둘러앉아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로 10시 영업 제한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남동생은 한 달에 한번 '정모'를 제안했다. 아니, 한 달도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동생이 너무 귀엽고도 고마웠다. 그래서 우리의 다음 정모는 다음 주 토요일이다. 이번에는 집 근처에 오래된 술집에서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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