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가까운 가짜를 연기하고, 배우는 어디로 가는가?
배우의 집, 배우의 동네, 배우의 촬영장...
'연기'에 대한 배우의 민낯을 들춰내는 이 이야기가 나는 매우 반갑다.
언제부터인가 인터뷰집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과정.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깊어지는 대답의 정도와 인터뷰의 끝에 다다르면 어쩐지 친밀해진 것 같은 묘한 감정도 좋았다.
그런데, 배우의 인터뷰집이라니.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평소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모여있어 아껴읽으려했으나, 어쩔 수 없이 단숨에 한 권을 읽어버렸다.
이 책의 구성은 배우의 '공간'에 집중한다. 처음 배우에게 의미 있는 공간에서 만나 장소를 이동하며 배우의 친구가, 또는 감독이 더해지기도 하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배우 박정민의 방
저는 천생 배우의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자격지심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더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자신이 본 것, 느낀 것 안에서 상상할 테니까요.
저는 비관론자에 가까워서 저를 몰아세우긴 하지만, 그래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국 제가 성장하는 동력이 된다고 믿어요.
박정민의 배역은 매번 기대된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박정민의 연주가 6개월 간의 연습이후 나온 장면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등장했을 때, 그리고 그가 쓴 <쓸만한 인간>을 읽었을 때. 나는 이 배우에 완전히 빠졌다.
매번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박정민은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는 이 배우에게서 위로를 얻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태도. 그리고 그 노력이 자신을 성장하게 한다는 굳건한 믿음. 그 유약함과 단호함이 좋다.
#배우 변요한의 방
복싱을 등록한 날 바로 "스파링하겠습니다!" 했어요. (...) '아, 이건 안 맞을 수 없는 스포츠구나. 패배할 때도 맞지만, 설렁 이긴다 해도 결국 맞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구나.' (...) 맞지 않으려 하면서 탈이 난 거죠. 이젠 알아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런 시간을 통과하며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그 이해도 100퍼센트일 순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해는 내가 안다고 착각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이해보다는 안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늘 기자님께 건넨 모든 말들이 제가 성장해서 나온 것들이면 좋겠어요. 거품이 아닌. 사실, 오늘의 이 말들은 지금의 제가 제 나이에 생각할 수 있는 최고치예요. 이게, 지금의 나예요.
자신이 내뱉은 말, 행동. 확신있게 그것이 자신의 최고치임을 단언하는 태도가 난 부러웠다. 일말의 의심이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바로 지금 나에 대한 확신, 믿음.
하지만 그는 나를 제외한 그 어떤 타인에게는 관대하다. '난 너를 이해해'. 이 말이 가지는 오만과 허세를 따듯한 온기로 안으려는 배우의 태도를 습득해보려 한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호기심이었고, 마지막에 책을 덮었을 때는 마음의 표면에서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매일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다 보니 점점 메말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감정의 요동이 없고, 질문도 생각도 없는 황량한 느낌. 그런데 이 책을 덮고는 약간의 메마른 갈증이 해소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심으로 자신의 일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닮고 싶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으면, 내가 겪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태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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