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예쁜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지만
언젠가 시들해질 꽃을 보며 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현상 유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힘겹게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가.
시작은 막차가 끊긴 역 앞에서였다. 키누(아리무라 카스미)는 늘 그렇듯 의미 없는 모임에 갔다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휴지 2통을 샀다. 무기(스다 마사키)는 짝사랑 우나이를 보러 노래방에 갔다가 정작 그녀는 보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막차가 끊긴 역 앞에서 그들은 첫차를 타기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둘은 매번 이어폰이 꼬여있고, 호무라 히시로와 나가시마 유 작가의 책을 좋아하고, 심지어 영화 티켓은 책의 책갈피로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키누의 모습에서 마치 무기를 보는 듯하다. 그렇게 그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키누와 무기의 사랑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잘 맞던 퍼즐이 하나씩 지워지고 사라졌다. 키누는 메이가 운영하는 '연애 생존율' 블로그에 자주 들렸다. 그런 메이가 자살을 했다.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은 하나라고. 키누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지만, 자신의 연애는 결코 짧은 파티처럼 끝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무기는 취업을 하며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키누는 무기를 위해 '먹는 게 느려'라는 책을 골랐지만, 무기는 자신을 위해 '인생의 승산'을 펼쳤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 끝이 난다.
-메이의 '연애 생존율' 내용 중
그러다 무기의 회사에서 일하는 트럭기사 이이다가 물에 빠진다. 무기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모두 싣고 말이다. 이이다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노동자로 불리고 싶지 않다.'라고 고백했다. 무기도 그런 삶을 원하던 때가 있었다. 정성스레 일러스트 한 컷을 그리고 채색을 하며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다고 생각한 무기였다. 그랬던 그는 바닥에 흥건히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건들을 보면서 '산다는 건 책임이야' 라며 중얼거린다.
키누는 회계 사무직의 일을 그만두고 지인이 하는 이벤트 기획회사에 입사한다. 키누는 자신의 취미와 맞는 일을 찾았지만 그런 키누를 무기는 이해하지 못한다. 놀이는 일이 될 수 없다면서 말이다. 무기는 학생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쫓아다니는 키누가 그저 어려 보인다. 그렇게 둘의 싸움은 잦아진다. 키누와 무기는 친구의 결혼식에 간 뒤, 서로 헤어짐을 결심한다. 둘은 추억이 많던 함바그 집에 들어간다. 거기서 무기는 결혼을 제안하고, 키누는 이별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분명 둘 다 단호하게 헤어질 마음이었다. 하지만 무기는 헤어질 자신이 없었다.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거야.
... 어쩌면 나도 이제 아무것도 못 느낄 수도 있어.
처음에는 키누가 마음 아팠다. 키누가 좋아한 무기는, 무기에게서 나의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였다. 하지만 감히 그런 네가 달라졌다. 무기는 더 이상 골든 카무이의 책을 읽지 않는다. 벌써 13권까지 나온 책이지만, 무기는 7권에 멈춰있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니 무기의 입장을 더 대변하고 싶었다. 무기는 '내 인생의 목표는 너와의 현상 유지야'라는 말을 하곤 했다. 무기는 사랑하는 키누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한 그림을 외면했다. 대신 안정적인 월급과 사회적 안전망을 선택했다. 그런 무기에게 더욱 마음이 쓰인다고나 할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자꾸 변해간다. 미치게 좋아하던 것이 아무런 감정도 없어지고도 하고, 싫어지기도 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 현상을 내버려 두는 대신, '너 달라졌다', '예전의 너는 이런 걸 좋아했는데'라고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 관계가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 대신 관계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화'와 '존중'. '대화'를 하며 상대의 계속해서 변하는 모습을 노력하며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상대에게 자신의 생활 방식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선택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앞으로 집들이 휴지를 보면 키누와 무기가 생각날 것만 같다. 사이좋게 하나씩 들고 가던 그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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