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 점 하늘_김환기 : 수화 김환기의 작과 거대한 점

전시

by stack.er 2023. 8. 8. 12:44

본문

《한 점 하늘_김환기》
수화 김환기가 담은 온전한 '조선의 마음'에서
작고 거대한 '점'까지


#1_달/항아리

전시 1부의 주제는 <달/항아리>로 작품의 시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이다. 수화 김환기는 '아방가르드 양화 연구소'를 거쳐 '자유미술가협회' 활동을 하며 '반추상'을 펼쳐간다. 
 
'조선의 것'을 그림에 담기 위해 조선의 아름다움, 정서, 특색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시도를 반복한다. 그렇게 완성된 항아리와 달의 합일. 일본 유학 이후부터 6·25 전쟁, 파리 활동시기까지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론도, Rondo, 1938

'론도'란 동일한 주제가 되풀이되는 음악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번 전시 중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웠던 작품으로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론도를 그렸을 때의 장면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 중 론도 알레그로와 슈베르트의 론도 A장조 D438번을 즐겨 들었다. 흐르는 듯한 론도 멜로디와 유연한 리듬이 유난히 마음에 닿았다. _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65

이 작품은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 에 출품한 작품이다. 수화 김환기에게는 아이가 셋 있는데,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방 안에는 싱그러운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음악이 흐르고 있고, 아이는 그림 그리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또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수화 김환기의 모습이 생생하다. 
 
왼쪽에는 수화 김환기, 오른쪽에는 세 아이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태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형태를 분할하고 그 안을 다채롭게 채색했다. 색채를 많이 사용했지만, 색채는 계속적으로 반복되면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풍경, 1930년대 후반

땅과 하늘, 산, 강을 단순하게 분할했다. 산도 가까운 산과 먼 산의 색을 다르게 사용했다. 집의 형태는 ㄱ,ㄴ,ㅁ 등 작고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수화 김환기가 바라봤던 1930년대의 마을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달과 항아리, 1952

둥근 항아리는 달로 올라갔다. 그림 속에는 총 3개의 둥근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항아리, 다른 하나는 달, 그리고 항아리 안에 비친 달이다. 투명한 듯한 백자를 보고 있으면 항아리 안으로 달이 들어오는 듯함을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백자와 자연의 합일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순간, 백자가 둥둥 떠서 하늘로 올라갔다. (...)
"내가 그린 건 조선백자가 아니라 조선시대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넉넉한 마음이다. (...)
삐뚜름한 원은 그들의 순박한 마음이다."  _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172

수화 김환기는 항아리를 그저 희고 둥근 것으로 보지 않고, 그 너머 조선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마음'을 담아내고자 아마 그는 부단히 항아리를 매만져 보았을 것이다. 
 

백자와 꽃, 1949

 '구상'이란,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인 사물을 그리는 것이다. 반면 '추상'은 머리속의 관념을 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추상'이란 어떤 개념일까? 실제 존재하는 달, 항아리의 '구상'을 그리되, 항아리가 달과 같다는 '추상'적 관념을 바탕으로 항아리를 달에 닿게 그리는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로 따졌을 때, 항아리가 달에 닿을 수 없어도 말이다. 

새로운 사실화를 그린다는 의미의 '신사실'이라는 용어는 김환기가 만들었는데, (...) 김환기는 훗날 미술평론가 이경성에게 신사실은 자신이 추구하던 반추상, 즉 추상도 아니고 구상도 아닌 그림을 지칭한다고 밝혔다.
_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169

 

꽃가게, 1948

선반은 가로, 세로 갈색 선으로, 화분은 면으로 꼼꼼히 칠해져있다. 그리고 꽃은 점을 찍은듯하다. 3-4개의 점으로 꽃이 된 것이다. 점, 선, 면으로 이뤄진 추상의 원리에 충실한 그림이다. 
 


1951년 부산에서 살 때다. (...) 한번은 복중에 일을 하다 말고 내 정신상태를 의심해 보았다.
미쳤다면 몰라도 그 폭양이 직사하는 생철지붕 바로 밑에서,
그것도 허리마저 펼 수 없는 그런 다락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판자집, 1951
판자집, 1951

6·25 전쟁이 발발하자 수화 김환기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당시 부산 앞바다의 피난선, 수용소 천막 등을 담았다. 길게 늘어선 판잣집 축대는 한쪽으로 기울어져있고, 붉은 틈이 그 사이를 메우고 있다. 좁고 작은 방에 여럿 붙어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와중에 반쯤 열린 창문, 열린 창문 등 들쑥날쑥하게 창문의 높낮이를 그려 리듬감 있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노란 과일이 있는 정물(원제 :황과), 1954

앞에서 여러 정물화들이 전시되었지만, 이 그림은 다른 정물화들과는 구도와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구도'는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의 시점을 취하고 있고, '구성'은 가운데 검은 선을 중심으로 노란 과일이 두 개씩 쌍을 이뤄 배치되어 있다. 
 

달빛교황곡(원제 : 호월), 1954
여인들과 항아리, 1960

이 작품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이다. 계속적으로 수화 김환기가 시도한 면분할적 구성이 반복된다. 그 안에 항아리, 기와, 사슴, 항아리를 든 여인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머리에 항아리를 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이과전'에 출품한 <종달새 노래할 때> 속의 여인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항아리, 1956

1956년 4월, 드디어 수화 김환기는 그렇게 바라던 파리에 도착한다. 그는 파리에서 개인전을 하기 전 그곳의 작가들에게 혹여나 물들까 싶어 전시도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요동치는 미술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1월 27일 C형에게
파리에 와서 정말 바쁘기만 하오.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을 일을 하고있소. (...)
내 예술은 하나 변하지가 않았소.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만 될 것 같소. (...)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밝은 태양을 파리에 와서 알아진 셈.

「파리통신」중에서, 「현대문학」, 1957년 1월호 

 

영원의 노래, 1957
정원, 1957

니스의 무라토르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를 앞두고, 수화 김환기는 니스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다. 자신의 그림 속 항아리, 달, 그리고 이들의 희고 푸름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이것보다 잘 전달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조선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람들은 깨끗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백의민족이라 부를 정도로 흰빛을 사랑하고 흰옷을 많이 입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푸른 도자기 청자를 만들었고, 간결을 사랑하고 흰옷을 입는 우리는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__「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235

 


[왼] 수화 김환기가 운영하던 '종로화랑' 간판 / [우] 도자기와 화구들

 

편지와 스크랩북뿐만 아니라 파리에 갔을 때의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그중 57년 딸에게 보낸 도록의 편지 내용이 너무나 서사적이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고스란히 잘 전달된 대목인 듯하다.  

두 번째 도록을 너희들에게 보낸다. (...)
나는 내 눈과 머리와 내 손을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순결한 이 도록은 네 엄마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첫 장을 골라 누구에게도 보이기 전에 너희들에게 먼저 보내는 기쁨을 갖는다. 

-1957년 5월 27일 밤
영숙, 금자, 정인이에게
파리에서 아빠.

 


#2_거대한 작은 점

뉴욕 이주 이후 본격적으로 점화를 펼친 시기의 작품들이다. 그의 그림 속 자연들은 점, 선, 면으로 대체되고, 1969년 경 전면점화에 도달한다. 

2-Ⅶ-70, 1970

전시 2부의 작품들의 스케일은 1부와 다르게 매우 크다. 하지만 위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작은 사이즈이다. 검은 배경 속 색색의 점화가 인상적이다.

 

[왼] 메아리 (8), 1965 / [우] 메아리 (3), 196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Ⅳ-70#166, 1970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책의 초반에는 수화 김환기와 옛 벗들의 관계가 잘 그려져 있다. 조선의 정수가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고, 수업이 끝나고 뒷골목에 가 술 한잔 걸치던 사이었다. 하지만 6·25 전쟁을 겪으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가깝던 길용준, 정지용, 이중섭 등은 월북을 했거나 죽었다. 

스쳐 지나갔거나, 머물렀거나, 현재 함께 하고 있는 그 수많은 인연들을 헤아려보며 그는 점을 찍었을 것이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 점을 찍는 일을 하고 있다. 오만 가지, 죽어간 사람, 살아있는 사람, 흐르는 강, 내가 오르던 산, 돌, 풀포기, 꽃잎 - 실로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내일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점을 찍어간다.
__수화 김환기가 딸에게 보낸 편지 中

 

그림의 제목은 평소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 시에서 착안했다. 수화 김환기는 딸에게 '서럽도록 인간의 사랑이 충만한 아름다운 시'라며 편지에 써 보내기도 했다.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5-Ⅳ-70 #200, 1971

두 개의 우주로 분할되어 있는 이 작품은 흔히 수화 김환기와 그의 아내 김향안을 뜻한다고 풀이된다. 오묘하게 비슷한 듯 다른 두 우주를 보고 있으면 그 원초적인 점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Ⅳ-70 #200, 1971
26-Ⅴ-71 #204, 1971
3-Ⅱ-72 #20, 1972

수화 김환기의 점화는 그동안 우주를 뜻하는 푸른색만 사용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색감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1부 전시에서도 느꼈지만, 수화 김환기는 색을 참 잘 쓰는 작가인 듯하다. 


19-Ⅲ-74 #329, 1974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지막 생애년도(1974) 그림은 모두 검은색 점화이다. 불과 1-2년 전 그림만 해도 푸른빛을 사용해 전개되던 그의 그림은 생의 마지막을 달려가는 듯하다. 

7월 12일
해가 환히 든다. 오늘 한 시에 수술.
내 침대엔 'NOTHING BY MOUTH'가 붙어 있다. 
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김환기 뉴욕일기」, 환기미술관, 2019


전라도 작은 섬 안좌도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항아리에서 작은 점에 이르기까지.

수화 김환기의 예술은 계속적인 변화의 시도였다. 구상과 추상, 점화 이전과 점화로 나뉠 만큼 그의 예술의 형태적 변화는 크다. 

 

조선의 것을 담기 위해 항아리, 매화, 학 등을 그리면서 '반추상'을 추구했다. 또한 당시 그는 홍익대와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순차적으로 맡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넉넉한 삶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넓은 세계에서 자신의 예술을 인정받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도 오히려 그들의 것을 흡수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더 그림에 매진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떠나 봄으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 된다. 

 

르코르뷔제의 예술이 새롭듯이 이조자기 역시 아직도 새롭거든. 우리의 고전에 속하는 공예가 아직도 현대미술의 전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크나큰 사실입니다. 
-「파리에 보내는 통신 - 중업 형에게」 중에서, 「신천지」, 1953년 6월 호

 

파리로 먼저 떠난 건축가 김중업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화 김환기는 우리의 백자를 르코르뷔제의 예술과 비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백자를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인 것이다.

 

예술가의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의 것을 담고, 자신의 예술을 더 넓은 세계에서 보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더 나아가고 싶다면, 머물러 있으면 안 됨을 다시 한번 배운다. 

 


about exhibition.
《한 점 하늘_김환기》 a dot a key kim whanki
호암미술관 전시실 1, 2
2023.05.18. - 09.10
exhibition date. 2023.08.04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